옷장을 열어보면 옷은 가득한데 이상하게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옷을 사고, 유행이 지나면 손이 가지 않는 옷은 옷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몇 번 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면서 또 새로운 옷을 구입하게 되죠.
하지만 옷 한 벌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자원과 환경 부담이 숨어 있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는 매년 약 9,200만 톤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또한 패션·섬유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래서 이번 제로웨이스트 생활 8편에서는 무조건 친환경 옷을 새로 사는 방법보다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새 옷을 사기 전에 옷장부터 확인하기
쇼핑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검은색 티셔츠가 여러 장 있거나, 지난해 사놓고 한두 번밖에 입지 않은 옷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UNEP 역시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소비자가 자신의 옷장을 먼저 활용하고 기존 옷을 수선하거나 변형해서 입는 방법을 권하고 있습니다.
장을 보기 전에 냉장고를 확인했던 것처럼 옷을 사기 전에는 옷장을 먼저 확인해 보세요.
2. ‘싸니까 산다’보다 ‘몇 번 입을까?’ 생각하기
세일 문구를 보면 필요하지 않은 옷도 사고 싶어집니다.
“이 가격이면 하나쯤 사도 괜찮겠지.”
하지만 싸게 산 옷을 두세 번밖에 입지 않는다면 과연 좋은 소비였을까요?
옷을 고를 때 가격표만 보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이 옷을 최소 30번 이상 입을 수 있을까?”
정확히 몇 번을 입어야 친환경이라고 정할 수는 없지만, 구매하기 전에 실제 활용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동구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UNEP 역시 패션 산업의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줄이고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하는 순환형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3. 유행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 선택하기
이번 계절에 유행하는 디자인도 좋지만 몇 달 뒤에는 손이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기본 셔츠, 티셔츠, 청바지, 단색 니트처럼 여러 옷과 쉽게 조합할 수 있는 제품은 비교적 오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옷을 살 때는 디자인뿐 아니라
- 가지고 있는 옷과 잘 어울리는지
- 관리하기 쉬운 소재인지
- 봉제 상태가 튼튼한지
- 여러 계절에 활용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옷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한 벌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의류 제로웨이스트의 시작입니다.
4. 세탁 횟수를 조금 줄여보기
한 번 입은 옷을 무조건 세탁기에 넣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속옷이나 땀에 젖은 운동복처럼 바로 세탁해야 하는 옷도 있습니다.
하지만 겉옷이나 오염되지 않은 바지처럼 상태에 따라 바로 세탁할 필요가 없는 의류도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세탁하면 물과 에너지를 사용할 뿐 아니라 옷감에도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옷의 상태와 세탁 표시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세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5. 작은 손상은 수선해서 입기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고 옷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구멍이나 풀린 박음질, 고장 난 지퍼처럼 수선할 수 있는 부분은 고쳐서 다시 입어보세요.
직접 수선하기 어렵다면 동네 옷수선집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EPA에서도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5R 원칙 가운데 Repair(수리)를 강조하며 옷처럼 닳거나 손상된 물건은 버리기 전에 수리를 고려할 것을 권장합니다.
저는 제로웨이스트에서 ‘수선’이라는 습관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망가졌다고 버리는 생활에서,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생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6. 안 입는 옷은 교환하거나 나눔하기
내가 입지 않는 옷이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옷일 수 있습니다.
상태가 좋은 옷이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눠주거나 중고거래를 활용해 보세요.
친구들과 작은 옷 교환 모임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UNEP 역시 빈티지 매장 이용, 중고 의류 구매, 친구와 옷 교환, 특별한 날 필요한 옷 대여 등을 순환형 패션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해서 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7. 특별한 날 입는 옷은 대여도 고려하기
결혼식이나 행사, 촬영처럼 특정한 날 한 번 입기 위해 옷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입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꼭 새 옷을 구입해야 할까요?
한두 번 필요한 정장이나 드레스, 특별한 의상이라면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소유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바꾸면 옷장도 가벼워지고 불필요한 소비도 줄일 수 있습니다.
8. 중고 의류에 대한 생각 바꾸기
중고라고 하면 오래되고 낡은 옷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중고시장에는 몇 번 입지 않은 옷이나 거의 새것과 비슷한 제품도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 옷처럼 성장하면서 짧은 기간만 사용하는 의류는 중고거래를 활용하기 좋습니다.
EPA 역시 상태가 좋은 헌 옷과 신발은 기부할 수 있으며, 일부 매장에서는 의류와 신발을 회수해 재활용하기도 한다고 안내합니다.
새것만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선택지가 훨씬 넓어집니다.
9. 버리기 전에 다른 용도를 찾아보기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옷이라면 바로 버리기 전에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오래된 면 티셔츠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청소용 천이나 걸레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단추나 장식처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떼어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의류가 가정에서 재활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사용하기 어려운 의류는 지역의 의류 수거 기준이나 브랜드의 회수 프로그램 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EPA도 손상된 의류는 해당 기부기관이나 소매점의 재활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도록 안내합니다.
10.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이미 가지고 있는 옷’
친환경 소재로 만든 새 옷을 구매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 옷장에 있는 옷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입니다.
UNEP는 소비자에게 기존 옷을 수선하거나 변형하고, 빈티지·중고·대여·교환 같은 순환적인 선택을 활용하며, 새 제품이 필요하다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품질 좋은 옷을 선택할 것을 권합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패션은 계속해서 ‘친환경 제품’을 새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덜 사고, 오래 입고, 고쳐 입고, 다른 사람과 다시 나누는 것.
이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제로웨이스트 패션에 가깝습니다.
옷 한 벌을 오래 입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패션과 섬유 산업은 원료 생산부터 염색, 제조, 운송, 사용, 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환경에 영향을 줍니다. UNEP는 패션·섬유 산업을 기후변화, 자연·생물다양성 손실, 오염과 폐기물 문제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옷을 많이 생산하고 짧게 사용하는 소비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UNEP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5년 사이 의류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한 반면 옷을 사용하는 기간은 36%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행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옷의 수명을 늘리는 것입니다.
오늘 옷장에서 시작해 보세요
오늘 당장 모든 옷을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옷장에서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 3벌만 꺼내보세요.
그리고 각각 이렇게 질문해 보는 겁니다.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수선하면 입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 네 가지를 모두 해본 다음에 버리는 것을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제로웨이스트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두는 생활이 아닙니다.
필요 이상의 소비를 줄이고, 이미 가진 물건의 가치를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생활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마무리
옷 한 벌을 더 오래 입는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새 옷을 하나 덜 사고,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고, 입지 않는 옷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행동이 반복되면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새것을 사는 즐거움에서 오래 사용하는 즐거움으로.
이번 주에는 새 옷을 검색하기 전에 옷장 속에 잠들어 있는 옷부터 다시 한번 꺼내보세요.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옷을 다시 발견할지도 모릅니다.